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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보다

[도서]「청춘의 문장들 + : 청춘의 문장들 10년 그 시간을 쓰고 말하다」김연수 (마음산책,2014)





젊었을 때는 천 년을 살 수 있는 사람처럼 살았으면 해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보고 싶은거 다 보고요. 하지만 그런 낮을 보낸 날에도 밤은 어김없이 찾아 올 것이고, 그 밤에 대개 우리는 혼자겠죠. 그런 밤이면 아마 시간이 너무 많아서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예요. 맞아요. 그래서 청춘은 무거워요. 빨리 늙었으면 싶기도 하고요. 그럴 때 저는 저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가 마음이 동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문장들에 줄을 그었죠. 그렇게 책에다 몇 번 밑줄을 긋다가 잠들고 나면, 또 새로운 날이 시작됐죠. 역시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은 나날 중의 첫 번째 날, 누군가에게 <청춘의 문장들>은 그 새로운 날에 돌이켜보는, 지난 밤의 밑줄 그은 문장 같은 것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p.101 
그래서 소설을 쓰는 일은 일종의 체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눈으로 그 일들을 바라보고자 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모든 게 불확실해진다.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세계는 흐릿해진다. 여러 번 겪은 일이다. 이제 나는 그 흐릿함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대부분의 일들은 그처럼 흐릿하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결국 잘 죽고 싶은 욕망, 그러니까 잘 살고 싶은 욕망, 모든 것을 내 눈으로 바로 보려는 욕망은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내 안의 많은 것들이 들어와 있다는 걸 안다. 내게 소설이란 그것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지극히 사소한 일이다. 그 사소한 일로 인해 나는 때로 행복하고 자주 좌절하고 늘 불안할 것 이다. 삶을 살아가는 당신이 때로 행복하고 자주 좌절하고 늘 불안하듯이. 그럴 대 나는 사람에게 가장 가까워진다. 


p.106
겸손한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말씀하셨던 그 문장도 타인의 삶에 대해서 내가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나온 거예요. 쓸 수 있는 문장이 있고, 쓸 수 없는 문장이 있어요. 내가 경험한 것은 쓸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 같은 건 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사리 쓰지 못해서 주저하거나 아예 그 부분을 포기하는 걸 볼 때가 있는데, 이럴 때의 문장이 바로 겸손한 문장이죠. 겸손한 문장은 내성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건 자기가 아는 것들만 말한다는 점 때문이에요. 모르겠다, 타인에 대해서는 쓸 수 없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인식 아래에서 쓰는 문장이 바로 겸손한 문장이죠. 

 대표적인 예가 레이먼드 카버예요. 카버는 사람과 사람은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카버의 화자는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요. 내면묘사가 없어요. 화자도 독자도 작가도 볼 수 있는 것만 글로 써요. 딱 한번, <대성당> 에서만 제외하고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문장이에요. 누군가가 나를 잘 안다고 말할 때 느끼는 제 거부감도 그런 맥락에 놓여 있는 거죠. 여러 차례 얘기한 전지적 작가 시점에 대한 반감 역시도요. 기본적으로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는자가 쓰는 문장이 제게는 좋은 문장이에요. 예전에는 '윤리적인 문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건 마치 우월한 위치에서 쓰는 문장 같고요. 그냥 몰라서 모르겠다고 쓰는 문장이에요.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타인에 대해서 쓰는 문장, 그러니까 '무지한 문장'이랄까요. 그게 좀 전달이 안될 것 같으니까 '겸손한 문장' 이라고 말했는데, 이걸 무슨 작가의 성격하고 혼동하시면 안 되고요. 어쨋든 모른다고 말하는 것, 그거 제가 생각하는 문학의 핵심이에요. 


p.170
-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나 작품을 꼽는다면요?
= 지금은 페르난두 페소아와 안토니오 타부키를 좋아해요. 루이지 피란델로도요. 셋 다 비슷한 카테고리 안에 있는 작가들이에요. 그와 비슷한 사람으로 구르지예프란 신비주의자도 있어요. 왜 이들이 한데 묶이냐면 다들 '나'란 여러 개의 '나'들로 구성됐다고 주장하기 대문인데, 그건 마치 내 생각과 같거든요. 그래서 읽다가 보면 깜짝 놀라게 되죠.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줌파 라히리도 좋아합니다.